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5승을 올린 김세영이 2014년 LPGA 진출을 선언했을 때만 해도 코스 상태가 다르고 이동 거리가 긴 미국 무대에서 데뷔 첫 해부터 좋은 성적을 내리라고 기대한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김세영은 그런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지난 2월 시즌 두 번째로 출전한 퓨어실크-바하마 클래식에서 첫 우승을 차지하더니 4월 열린 롯데 챔피언십에서 2승을 수확했다. 그리고 지난 11월 1일, 중국 하이난섬 블루베이 LPGA에서 세 번째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LPGA 신인이 투어 첫 해에 3승을 올린 건 흔치 않은 일이다. 1996년 캐리 웹(호주)이 첫 해 4승을 올리며 신인왕 타이틀을 거머쥐었고, 1998년에는 박세리가 4승으로 신인왕에 올랐다. 2009년에는 신지애가 3승으로 신인왕을 차지했고, 지난 시즌에는 리디아 고가 3승으로 신인왕 타이틀을 가져갔다. 이제 김세영이 시즌 3승을 거두며 그 바통을 이어받은 셈이다.
블루베이 LPGA 우승으로 세계 랭킹도 11위에서 7위로 껑충 뛰어오른 그는 3승을 거둔 골프장이 모두 해안가에 위치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더욱이 LPGA 신인왕 수상도 확정됐다. ‘역전의 여왕’, ‘드라마 작가’, ‘골프 깡패’ 등 다양한 수식어를 자랑하는 김세영을 강원도 홍천 블루마운틴 골프장에서 만났다.
아주 잠깐 동안의 귀국이었다. 중국에서 3승을 거두고 귀국 후 딱 3일만 한국에서 머물다 곧장 미국 샌디에이고로 떠나는 일정이었는데 그 바쁜 틈을 기자가 비집고 들어갔다.
김세영은 고등학생 신분으로 2부 투어를 뛰기 전부터 미래에셋자산운용의 후원을 받았다.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 선수에게 대기업이 후원에 나섰다는 건 무척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그 인연이 어느새 7년을 넘어섰다. 기자가 블루마운틴 CC를 찾은 날은 마침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과 김세영의 라운딩이 예정돼 있었다. 박 회장과 라운딩을 마친 김세영과의 인터뷰를 문답식으로 정리했다.
귀국하자마자 미국 샌디에이고로 출국한다고 들었다. 중국에서 대회를 마치고 잠깐 한국에 들어온 건가.
“딱 3일 쉬고 다시 출국하는 일정이다. 그렇다보니 이번엔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 (박현주)회장님과의 라운딩은 그동안의 도움에 대한 감사 차원에서 우리가 먼저 제안했다. 회장님은 선수가 피곤해 한다며 좀처럼 골프 치자는 얘길 하지 않으신다.”
<마치 아버지와 딸처럼 훈훈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과 김세영이 오랫만에 라운딩을 가졌다.(사진=이영미)>
박현주 회장의 골프 실력은 어느 정도인가.
“회장님 실력이 굉장하시다. 기업인으로 최고의 위치에 있는 분이라 그런지 골프를 치는 시각이 남다르시다. 같이 라운딩하다 보면 배울 점이 정말 많다. 성공하신 분 만의 ‘키워드’를 갖고 계시는 것 같아서 골프보단 인생을 배운다고 생각한다. 라운딩하며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는데 그중에서 ‘20대 때에는 시간을 잘 써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네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다. 그리고 체력 관리 잘해라’ 등의 얘기가 마음에 남는다. 깊이 공감하고 있고, 하나도 놓치지 않고 새겨들었다.”
지난 4월 롯데 챔피언십대회에서 박인비와 연장전까지 치렀지만 연장전에 샷 이글로 결국 우승을 차지했다. 그때 박인비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세영은 기적을 몰고 다니는 선수’라고 말했었다.
“인비 언니가 정말 그렇게 말했나? 와, 진짜 감사하다. 인비 언니는 같은 골프 선수가 봤을 때 우리와 ‘급’이 다른 선수로 보인다. 정점을 찍은 선수라 자기만의 힘이 있다. 인비 언니의 강인한 정신력을 닮고 싶다.”
‘멘탈’과 관련해선 김세영 프로도 내공이 깊지 않나. ‘역전의 여왕’이란 타이틀이 붙을 만큼.
“난 인비 언니 따라 가려면 아직 멀었다. 하지만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나도 어느 위치에 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갖고 있다. 사실 인비 언니와 연장전에서 맞붙었던 롯데 챔피언십대회는 연장전을 치르는 동안 인비 언니는 보이지 않았다. 무조건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겠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누가 불러도 캐디와 그린 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하다 보니 말도 안 되는 샷 이글이 나오더라.”
<지난 4월 하와이서 열렸던 롯데챔피언십서 김세영은또 다시 연장 승부 끝에 시즌 2승에 성공했다. 당시 경쟁 상대는 세계랭킹 1위였던 박인비라 전 세계 골프팬들에게 전해진 임팩트는 더욱 강했다.>
<동영상=롯데챔피언십 김세영의 기적같은 샷 이글 장면>
시즌 3승을 거둔 블루베이 LPGA대회에서 챔피언 조에 포함된 스테이시 루이스에 대해 특별히 감사 인사를 전한 바 있다. 그 내용이 ‘그녀는 나의 우상이다. 오늘 같이 경기해서 영광이었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였다.
“스테이시 루이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이다. LPGA 투어에서 만난 이후 그의 팬이 됐다. 그는 남들과 섞이지 않고 마치 ‘골프 장인’처럼 하루 24시간을 골프에 맞춰 생활한다. 주위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한 길만 보고 가는 모습에서 엄청난 매력을 느꼈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루이스가 먼저 앞에서 보여주고 있는 듯 했다.”
지금까지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언제였나.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전향했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 이전에는 골프 선수로 살아가는 걸 당연시했는데 자아가 형성되면서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순간을 맞이했다. 그때 혼란스런 경험을 많이 했다. 때마침 드라이버 입스를 겪으며 내 자신과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다행히 좋은 트레이너 선생님을 만나 짧은 시간에 슬럼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올시즌 LPGA 데뷔를 앞두고 걱정한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2014 시즌에 LPGA로부터 초청을 받아 연습 삼아 미국 투어를 경험했던 부분이 큰 도움이 됐다. 그 덕분에 미국 투어에 대해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물론 데뷔 첫 경기에서 예선 탈락하는 바람에 충격을 받긴 했지만 말이다(웃음).”
그러게 말이다. 지난 2월 LPGA 투어 개막전 코츠 골프챔피언십 대회에서 2라운드 8오버파로 컷 탈락했었다.
“컷 통과 기준인 4오버파에도 한참 못 미쳤고, 순위도 100위 권 밖으로 밀려난 참담한 성적표였다. 내가 LPGA 대회를 너무 만만하게 봤나? 싶더라. 예방 주사를 제대로 맞았다. 개막전에서.”
그런데 개막전에서 예선 탈락했던 선수가 그 다음 대회인 퓨어실크 바하마 LPGA클래식에서 우승을 거둔 건 정말 극적인 반전이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연습에 충실했다. 하루 5시간 넘게 퍼트 연습에 매달리며 이전 대회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복기했다. 첫 승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3라운드까지 (박)인비 언니와 (유)선영 언니가 공동 선두였고, 선두에 2타 차 뒤진 공동 6위로 최종 라운드를 맞이했다. 15번 홀까지 선영 언니에게 1타 차 뒤진 채 2위에 머물다 마지막 홀 버디로 연장에 합류했고, 연장 첫 홀에서 버디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꿈같은 일들이 그 대회에서 벌어졌다.”
LPGA 투어 첫 승과 KLPGA 대회 첫 승 중 어느 ‘첫 승’이 더 의미가 있나.
“2013년 4월 KLPGA 개막전 롯데마트 여자오픈에서 첫 승을 올렸던 게 훨씬 큰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나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준 우승이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대역전극을 펼치며 정상에 올랐다. 2012 프로 첫 시즌에는 20개 대회에 참가해 톱10에 3차례 들고 상금 랭킹 32위에 머물며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참을 ‘인’자를 가슴에 새기고 때를 기다리며 2013 시즌을 맞이했고, 그 해 개막전 최종 라운드 마지막 18번홀(파5)에서 극적으로 이글을 잡으며 프로 첫 우승컵을 들어 올린 것이다. 만약 그 우승이 없었다면 프로에서 빠른 시간에 자리를 잡지 못했을 것이다.”
올시즌 이룬 성적에 대해 만족하나.
“80% 정도는 만족한다. 시즌 마칠 때까지 중요한 2개 대회(멕시코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과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리는 투어챔피언십)가 남아 있다. 그래서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해피엔딩’으로 시즌을 마무리하는 게 목표이다.”
그 ‘해피엔딩’의 선물이 신인왕인가(김세영과 인터뷰할 때만 해도 신인왕이 확정된 상태가 아니었다).
“정말 받고 싶다(웃음). 내가 수상할 가능성이 가장 높지만 아직 확정된 게 아니기 때문에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다.”
만약 신인왕과 올림픽 출전 중에서 하나만 선택하라고 한다면 어떤 걸 택하겠나.
“올림픽 출전이다. 물론 신인왕 수상도 욕심이 나지만, 올림픽은 태극마크를 달고 뛰기 때문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한국에 있을 때는 태극마크의 중요성을 잘 몰랐다. 미국에서 생활해보니 나라를 대표해서 뛰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깨달았다. 기회가 된다면 올림픽에 꼭 나가고 싶다.”
<두 명의 '슈퍼 루키'. 신인왕 승자는 김효주가 아닌 김세영이었다.>
김효주 프로와 신인왕 경쟁을 벌였다. 신경이 많이 쓰였을 텐데.
“아니다. 난 그런 경쟁 자체를 즐긴다. 실력이 뛰어난 선수들과 함께 미국에서 경기를 펼친다는 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모른다. 시합 중에는 치열한 승부를 펼치지만 골프장을 벗어나면 친분을 나누며 식사도 같이 하고 노래방도 가고 한다. 물론 가슴 속에 담아둔 모든 얘기를 다 털어놓을 수는 없다. 그래도 경쟁 속에서 피어나는 끈끈한 정이 존재한다.”
김세영을 상징하는 여러 가지 요소들 중 ‘빨간 바지’가 있다. 최종 라운드에는 항상 빨간 바지를 입었고, 빨간 바지를 입었을 때 우승한 일이 많았다. 언제까지 빨간 바지를 입을 건가.
“골프를 그만둘 때까지?(웃음) 빨간색은 내게 좋은 기운을 주는 것 같다. 다른 건 포기해도 빨간 바지는 포기 못한다.”
인터뷰 말미에 “영어를 언제 그렇게 배웠느냐”고 물었다. 김세영은 “저, 영어 못해요. 친구들이 ‘된장 영어’라고 매일 놀려요”라며 까르르 웃는다.
김세영은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아버지 김정일 씨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태권도와 함께 생활했다. 덕분에 태권도 공인 3단을 획득한 ‘태권 소녀’이다. 163cm로 골프 선수치고는 큰 편이 아니지만 태권도로 단련된 단단한 하체는 그를 ‘장타왕(264.7야드)’에 올려놓기도 했다. 긍정적인 마인드, 그를 뒷바라지하는 아버지의 희생, 그리고 못 말리는 승부욕은 김세영의 ‘오늘’보다 ‘내일’을 더 기대하게 만든다.
<동영상=블루베이 LPGA에서 우승하는 김세영>
아버지 김정일 씨, “세영이는 ‘딱지왕’이었다”
<태권도장을 운영하던 태권도 사범이 딸의 골프 뒷바라지를 위해 '골프 대디'를 자처했다. 김세영 아버지 김정일 씨는 내년까지만 딸 옆에서 동반자로 머물겠다고 말한다.(사진=이영미)>
한편 김세영의 아버지 김정일 씨는 김세영의 장타 비결을 ‘딱지치기’라고 설명했다.
“이건 언론에 처음 공개하는 내용이다. 세영이가 어렸을 때부터 딱지치기를 잘했다. 친구들과 딱지치기를 하면 포대자루에 친구들의 딱지를 모두 담아왔을 정도이다. 그 당시만 해도 골프보다 딱지를 더 좋아했으니까. 친구들 사이에서 별명도 ‘딱지왕’이었다. 5학년 때 그 좋아하던 딱지치기를 더 이상 못하게 만류했다. 딱지 때문에 골프 연습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딱지치기를 끊고 나서 집에 쌓아둔 포대자루들을 들고 나가 문방구 앞에서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딱지를 나눠주며 눈물을 뚝뚝 흘리던 세영이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딱지치기를 했던 힘이 골프에서 장타로 이어진 것 같다.”
여러 개의 태권도장을 운영하며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김정일 씨는 딸이 골프를 시작하고, 그 뒷바라지를 시작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생활고를 겪었다고 토로한다.
“태권도장하면서 모아둔 돈을 세영이한테 다 쏟아 부었다. 세영이가 프로로 전향한 해에는 애들 교육보험까지 탈탈 털어 썼다. 그때 전지훈련을 가야하는데 돈이 없었고, 사람한테 돈 빌리기는 싫고, 그래서 아내랑 상의 끝에 보험을 해지했고, 이후에는 체육관을 하나씩 정리하며 뒷바라지했다. 후원 기업이 나타나기 전까진 돈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지만 미래에셋의 도움을 받으면서부터 세영이도 나도 골프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김 씨는 김세영의 체력이 타고 났다고 말한다. 김세영의 할아버지가 고등학교 시절 럭비 선수였고, 자신도 태권도를 했기 때문에 김세영도 힘에 관해선 유전자 대물림 중이라며 환하게 웃는다.
“세영이가 태권도 안한 지 10년도 넘었는데 지금도 자세가 그대로 나온다. 얼마 전 재미 삼아 360도 회전 돌려차기 격파 동영상을 찍어서 SNS에 올린 게 LPGA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중계 방송사에서 소개했을 정도로. 솔직히 나도 깜짝 놀랐다. 자세가 너무 정확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태권도를 하며 체력 단련을 했던 게 하체의 힘을 키우고 정신력을 단련시키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김 씨는 가끔 딸의 강인한 멘탈을 지켜보며 혀를 내두를 때가 많다고 한다.
“세영이가 한국이든 미국에서든 우승하는 상황이 매번 드라마를 연출하는 듯 했다. 역전 우승도 많았고, 연장전에서 이긴 경우도 있다. 무서울 정도의 집중력과 자신을 다스리는 힘이 대단하다. LPGA 데뷔전에서 컷오프된 이후 새벽마다 나가 훈련을 했다. 골프장에서 살다시피 할 정도였다. 독한 승부사의 기질이 세영이 내면에 존재한다.”
돌이켜보면 LPGA 데뷔전이었던 코츠 골프챔피언십 대회에서 예선 탈락했던 게 김세영을 더욱 단단하게 만든 배경으로 작용했을 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그때만 해도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절망적이었지만 그 위기는 자신이 아닌 김세영 스스로 극복했다고 말한다.
“정말 비참했었다. ‘우리가 선택을 잘못했나?’ ‘뭐가 잘못된 걸까?’하는 생각을 반복하면서 고민을 거듭했다. 세영이 말로는 간절함, 절실함에 문제가 있었다고 하더라. 스스로 그런 진단을 내린 것이다. 그래서 다음 대회를 준비하며 절실함, 간절함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그 마음에 매달려 연습했다. 퓨어실크 바하마 LPGA클래식에서 기적 같이 우승을 차지하며 모든 일이 잘 풀렸다. 난 세영이에게 이런 말을 자주한다. LPGA 루키라고 해서 올시즌 우리의 목표가 ‘경험’은 아니라고. 프로 5년차 골퍼에게 경험은 핑계일 뿐, 매 대회의 목표는 우승이라고 강조한다. 지금까진 계획대로 잘 달려 왔다. 남은 대회에서 세영이가 유종의 미를 거두었으면 좋겠다.”
김세영이 골프를 시작한 이후 태권도 사범인 김 씨의 삶은 ‘골프 대디’로 변화를 이뤘다. 태권도장은 후배들에게 맡겨두고 그는 딸과의 동행에 나섰다.
“내년까지만 세영이 옆에 머물 생각이다. 그 후에는 아내에게 세영이를 맡기고 난 한국에서 태권도장 운영에 힘을 쏟으려 한다. 잠자는 시간을 빼놓고 하루 종일 붙어 있다 보면 딸과 종종 말다툼을 벌인다. 그때마다 난 세영이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낸다. 세영이가 옆에 있는데도 문자를 보내 내 마음을 전한다. 말로 하면 감정에 휘둘리지만 문자는 서로를 돌아보게 하는 차분함을 갖게 하는 것 같다. 난 내 딸이 골프만 하며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어느 순간 결혼도 해야 하고 일반적인 가정을 꾸리길 바란다. 골프 선수들한테는 가장 평범한 행복이 가장 도달하기 어려운 행복일 수 있다는 걸 투어 생활하며 느끼고 있다. 세영이가 그 행복을 찾기를,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강원도 홍천, 한 골프장에서 들은 ‘골프 대디’의 진심이 진한 울림으로 가슴에 와 닿았다.
<2015 블루베이 LPGA 대회에서 시즌 3승을 확정 지은 직후 보인 김세영의 세리머니. 그 모습 자체가 감동이다.>